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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는 오랜만에 침낭속에서 한번도 나오질 않고 따땃하니 단잠을 잤던 것 같습니다.
든든한 침낭(무려 동계용 거위털 1300짜리)덕분이긴 하지만 사실 트레킹 일정 중에 이 침낭이 정말 요긴하다고 생각했던 때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의 날에선 너무 더워서 덮고 잘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무게나 부피는 체력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고, 단 며칠이라도 이 침낭이 정말 요긴했다면 그걸로 제 몫을 다하는 것이니 침낭 때문에 크게 힘들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젠은 참...
챙겨오긴 했지만 랑탕, 안나푸르나에서 배낭속에 잠들어 있기만 했었고 여기EBC지역에서도 생각보다 눈이 없어 아직 한번도 사용 못했습니다.
버리자니 예정인 촐라패스(CholaPass) 넘을때, 혹은 나중에 안나푸르나서킷의 토롱라(Thorung La)같은 곳 넘을 때 필요할 것 같아 지금껏 가지고 다니지만 써보는 날이 오긴 올런지...(결론적으론 두번 쓰긴 씁니다)
오늘은 EBC에서 아침해를 맞이한 후 고락셉(Gorakshep)을 떠나 촐라패스(CholaPass)로 향하기로 정했으므로 새벽부터 EBC를 향해 길을 나섭니다.
어느 누군가에게 EBC(Everest BaseCamp)가 긴 여정의 끝이겠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기나긴 여정의 새로운 출발선인 걸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든 '끝'이라는 단어을 붙인다는게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매우 '상대적인 사실'에 기반하는 것 같습니다.
EBC에 가까워질수록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푸모리(Pumori)와 링트렌(Limgtren)을 잇고 있는 산등성이가 드러납니다.
붉게 물들면서 서서히 밝아지는 모습을 담아야 했었는데, 아쉽게도 고도와 추위탓에 헉헉거리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만큼이나 올라가버렸습니다.
EBC입니다. Everest Base Camp.
정확히는 EBC내에 흩어져 있는 각 나라의 원정대 캠프이거나, 각종 과학/연구용으로 장기 체류하고 있는 캠프입니다.
노란색 대형텐트들이 보이는데 그 위로는 집채만한, 아니 그보다 더 큰 바위들이 경사면에 즐비합니다.
지진이나 산사태가 일어날 경우엔 상당히 위험하죠!!
눕체(Nuptse)와 에베레스트 웨스트숄더(Everest WestShoulder) 뒤로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칼라파타르(KalaPattar)에서는 먼발치에서 바라봤는데 이제는 그 푸른 이빨속을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의 거리입니다.
아직 볕이 들지 않은 쿰부빙하지대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얼음 덩어리들이 작은 산처럼 여기저기 솟아있습니다.
상어의 겹니같은 이 빙하지대를 한마리 청소물고기가 된 마냥 여기저기 돌아다녀봅니다.
마치 동화속 얼음왕국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네요.
어디선가 엘사가 레딧고를 부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푸모리(Pumori)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또다른 건물들인데 돔형의 건물이나 노란 건물의 규모로 봐선 등정용 베이스캠프라기보다는 연구/과학용으로 보여집니다.
빛이 투과되는 빙하의 얼음덩어리는 마치 그 속에 청록색으로 발광하는 보석을 가둬둔 것처럼 엷은 색으로 반짝입니다.
조금 전의 SF영화에서나 봐왔던 돔형 의 독특한 건물도 어느새 그늘에서 벗어나 하얗게 빛나네요.
고락셉(Gorakshep)에서 볼 때는 푸모리(Pumori)가 단독으로 봉긋 솟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링트렌(Lingtren)과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링트렌(Lingtren)의 모습입니다.
한쪽면만 저렇게 직선으로 깍여 나간데다 얼음으로 한 면을 하얗게 채우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못해 기이하게까지 보입니다.
푸모리(Pumori)와 링트렌(Lingtren)을 닯아가고 있는 얼음덩어리들입니다 라고 생각하고 당시에 사진을 찍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보니 하나도 안닮았군요!
빙하지대의 얼음덩어리에는 꽤 큰 동굴도 간혹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 탐험해 벌 만 큼 깊진 않습니다.
해가 떠오를수록 푸모리(Pumori)의 능선에 쌓여있는 눈들은 더욱 더 하얗게 빛납니다.
EBC임을 나타내는 케른입니다.
꼭 사진의 케른 근처가 아니더라도 등반대의 선호도에 따라 이 근방 여러군데에 캠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어차피 물자수송이나 고도적응 등을 위한 거점 역할일 뿐 실제로 중요한 전진 캠프들은 훨씬 위에 위치합니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 EBC에 올라오면서 트레커들을 한명도 만나지 못한데다 사방을 둘러봐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저 한명 밖에 없는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합니다.
마치 외딴 행성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얼음이나 파먹으며 평생 살아야 하는 아재 신세가 된 느낌이...
영화에서처럼 감자농사나 지어봐야 할 거 같은데 기온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겠죠?
사방에서 들리는 거라곤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가끔식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다였는데, 어디선가 푸투투투투 하는 기계음이 조그맣게 들리더니 곧이어 계곡 전체를 진동시킬 정도의 소리로 증폭된 굉음을 내며 빨간 헬기 한대가 나타납니다.
헬기가 왔다는 건 크게 두가지를 의미하죠.
정상 등정을 위해 공중에서 기상상황이나 루트를 확인하거나...
조난/실종자 수색 및 시신수습을 하거나...
나중에 알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후자였습니다.
푸모리(Pumori) 링트렌(Lingtren)을 거쳐 에베레스트(Everest)와 눕체(Nuptse)방향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선회하는 비행을 두 세번 반복하더니 어디론가 날아가버립니다.
링트렌(Lingtren)의 거대한 얼음면이 헬기소리에 혹시나 우르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해보지만 이 정도 소리로는 택도 없는가봅니다.
다시 이곳에 헬기가 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목적을 달성했거나, 목적달성이 불가능하거나 둘 중 하나일듯 합니다.
EBC의 첫 느낌은 사실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곳에서 볼수 있는 봉우리들은 칼라파타르(Kalapattar)에서 훨씬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망할 수 있는데다 사방이 위로 솟아오른 지형 속 가운데에 놓여 있다 보니 꽉 막힌 느낌이 너무나 강합니다.
그래도 쿰부빙하를 직접 손으로 만져 볼수도, 그 속에서 걸어 볼수도 있으며, 신들의 정원 가장 깊은 심장부까지 왔다는 성취감과, 수많은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출발점이라는 의의를 생각해본다면 고락셉(Gorakshep)에서 여기까지 올 가치로는 충분해보입니다.
운이 좋다면 자국의 원정대원들을 만나볼수도 있으며, 혹은 우상으로 삼고 있는 위대한 등반가나 셀파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죠!
이유야 어떻든 이번 EBC 메인트렉의 최종 목적지,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에서 맞이했던 차분하고 고요한 아침을 뒤로하고 다음 여정을 서두르기 위해서 고락셉(Gorakshep)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Indian Army라는 글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캥거루와 인디안은 서양문명의 무지로 인해 탄생한 단어들이죠.
고락셉(Gorakshep)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던 침낭이며 옷가지며 갖가지 물품들을 배낭안에 하나씩 쑤셔넣습니다.
고락셉(Gorakshep)에서 맞이하는 두번째 아침이자 세번째 날이지만 배낭을 꾸리는게 한참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오래전부터 머물렀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며칠 머물다 보니 어느새 정도 많이 들었고, 이 신들의 정원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있고, 보고 싶은 풍경과 올라보고 싶은 언덕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곳이 아닌 다른곳에서 이루어야 할 꿈이 있고, 보고싶은 풍경이 있고, 올라보고 싶은 언덕이 있기에...
롯지문을 나선 나그네의 발길은 또다시 어디론가로 향합니다.
길을 걸으며 내려가다보면 아마도 푸모리(Pumori)와 링트렌(Lingtren)이 제일 먼저 시야에서 사라지겠죠...
그다음은 촐라체(Cholatse), 로부체(Lobuche), 다보체(Taboche), 눕체(Nuptse)...
아마다블람(Amadablam)과 캉테가(Kangtega), 탐세르쿠(Thamserku)는 그래도 꽤 오랫동안 함께 할거고...
EBC트렉을 따라 오르면서 새로운 봉우리 하나하나가 나타날때마다 심장이 뛰는 흥분과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느꼈다고 한다면, 이제는 어느새 얼굴도 익히고 정도 들어버린 옛친구 한명 한명과 작별해야 한다는 서글픈 기분마저 듭니다.
오늘은 아직 오전인데도 제 우울한 기분처럼 벌써부터 우중충하게 흐려집니다.
길을 나선지 수십분만에 허허...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촐라패스로 향해야 하는데 일단 아무도 이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없는데다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 홀몸으로 넘어가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고민을 해보지만...
역시 이런 길은 가는게 아닌 것 같아 일단 로부체(Lobuche)의 롯지에다 배낭을 내려놓고 따뜻한 차 한잔 하면서 언몸을 녹입니다.
창 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군요.
계속 진행하지 않은게 잘한 결정같습니다.
게다가 가이드나 포터도 없는 홀몸에 촐라패스로 향하는 트래커도 없으니 더욱 위험...
눈이 그치길 기다려보지만 그럴기미가 안보여 그냥 로부체(Lobuche)에 눌러앉고 배낭 해체작업을 합니다.
방수바지는 한국에서도 잘 안쓰는데 이렇게 여기서 한번씩 눈/비올때 참 요긴하게 쓰네요.
몇시간 내리던 눈은 이내 그쳤지만 이 변화무쌍한 날씨는 또 언제 바뀔지 모르니 일단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롯지밖에 나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헬기가 한대 나타납니다.
자세히 보니 아침에 EBC에서 봤던 바로 그 헬기로 보입니다.
공중에서 잠시 선회하더니 이내 넓다란 평지에 착륙합니다.
그런데...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것에 무언가를 싣고 와서 헬기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자세히 보니 침낭으로 동여맨 시신이군요...
아마도 이 헬기는 아침에 EBC에서 실종/조난자 수색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비록 좋지 못했지만...
두 구의 시신을 옮겨실은 헬기는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오르더니 저 멀리 산 아래자락으로 금새 사라져버립니다.
지금껏 트레킹을 하면서 자만했던 많은 부분들을 한번 되짚어보고, 자칫 무모하거나 위험했던 순간들을 상기시키며 스스로를 한번 더 추스립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든,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든 항상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픈 일인것 같네요.
눕체(Nuptse)연봉들을 바라보니 이 장엄하고 거대한 산들이 결코 아름다움만을 가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눈이 그쳤는가 싶더니 다시금 몰아치기 시작하고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는 하얀 눈으로 덮혀 갑니다.
만일 좀전에 무리해서라도 촐래패스(CholaPass)로 향했다면 어땠을까...
사고라는게 잘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확률적 수치는 얼마얼마이니 괜찮다, 나는 체력적/정신적으로 평균이상이다 라고 잠시 생각했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니 한심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눈이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통에 가까운 곳을 둘러볼 겨를도 없는데다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비록 그 순간은 아니지만)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오후내내 방에 머물렀습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다이닝룸에 갔더니 난롯가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오늘의 사고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 영어마비를 각오하고 물어보니 에베레스트(Everest)는 아니고 다른 봉우리 등반 도중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 같다고 합니다.
다이닝룸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죽은이에 대한 애도를 제의했고, 일제히 시끌벅적하게 오가던 대화를 중단하고 침묵이 흐르는 애도의 시간을 잠시 가졌습니다.
산악관련 다큐를 보다보면 이런 돌발적인 사고를 자주 보게 되고, 국내외의 많은 유명한 산악인들조차 실제로 겪는 일이기도 하지만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그 느낌은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느껴집니다.
제게도 분명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게다가 내일은 촐라패스(CholaPass)를 통해 고쿄(Gokyo)로 가야하는데 길은 어떨지지, 날씨는 어떨지, 촐라패스(CholaPass)로 향하는 트레커가 저 말고 있을지, 불안한 요소들이 너무 많아 롯지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딱 잘라 가지 말라고 합니다.
얼마전에 촐라패스(CholaPass)를 넘어가던 가이드와 트레커 두명이 실종되었는데 나중에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이 시기에는 오전 혹은 오후 접어들면서 눈이 내리는 경우가 많아 발자국이 사라지거나 화이트아웃으로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어 위험하다는군요.
게다가 혼자 몸이라고 하니 더더욱 말립니다.
제가 성격상 남 말을 잘 안듣는 편이라 만일 오늘의 사고를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롯지주인장의 말을 참고사항 정도로만 받아들였겠지만...
고민 할것도 없이 왔던길로 되돌아가 고쿄로 오르기로 결정합니다.
일정은 촐라패스(CholaPass)를 통해 가로지르는 것보다 이틀이나 사흘정도 더 소요되고 그곳에서의 풍경을 못보게 되지만, 왔던 길을 천천히 되짚으며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볼 수도 있고, 나름의 걷는 재미도 찾을 수 있으니...
게다가 위험부담은 제로!(그렇다고 사고의 위험이 전혀 없는 건 절대 아님!)
어디로 가든 내일은 아마도 이 신들의 정원, 아니 대문에서 조차도 조금씩 멀어지게 됩니다.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바라보며 정들었던 봉우리들과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지지만 어디론가 떠나야만 또 다른 풍경들과, 봉우리들과 마주할 수 있으니...
유행가 가사처럼 떠나야 할 때는 단 하나의 미련도 남기지 말고 떠나야...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대충 정리하고는 창밖에 내리는 눈송이를 세면서 신들의 정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지나갑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습니다.
EBC트레킹 중 처음인것 같네요.
아침에 꼳 일출을 봐야 한다는 다짐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오늘은 그냥 푹 자고 싶어서 알람 무시하고 자다보니 어느새 해가 떠올라버렸습니다.
촐라패스(Chola Pass)를 포기한게 아직도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들지만 언젠가 다음에 다시 오면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두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린 후 남체(Namche) 쪽으로 향합니다.
간밤에 제법 많은 눈이 내려서 세상이 온통 새하얗습니다.
이 작은 반짝임들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할만큼 강한데 민낯으로 다니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따갑기까지 합니다.
썬크림을 챙겨오긴 했지만 그 찐득거리는 느낌때문에 잘 안쓰는데 오늘은 무조건 발라야 할 정도로 눈에 반사된 빛이 강합니다.
푸모리(Pumori)도 눈으로 하얗게 뒤덮혔습니다.
마치 제게 보여줄 마지막 모습을 위해 곱게 화장한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 아래의 언덕도 원래는 마른풀과 이끼 때문에 갈색카펫이어야하는데 오늘은 새하얀 카펫이군요.
언제나 그렇듯 아침엔 눈부시게 푸른 하늘입니다만 눈이 내린 직후여서인지 더욱 더 새하얗고, 새파란 하늘이 되었습니다.
신들의 정원에 있는 다른 봉우리들과는 달리 트레킹 내내 바라볼 수 있는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도 예전보다 훨씬 더 하얗게 보입니다.
눈이 내려 앉은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을 속으로 비교해 보지만 그 우열을 가리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푸모리(Pumori), 링트렌(Lingtren), 쿰부체(Khumbutse)가 하얗게 단장하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를 배웅해 줍니다.
당분간은 이들을 볼수 있겠지만 아마 몇시간 내로 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겠죠...
포터 두 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커다란 짐꾸러미를 어디론가로 나르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아무리 착용감이 좋은 배낭을 맡겨도 네팔의 포터들은 이마로 짐들을 멥니다.
고락셉(Gorakshep)을 향하는 포터들은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요?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자신과 스쳐 지나가는 낯선 동양인에게 해맑은 미소를 지어주는 걸로 그 답을 대신합니다.
다보체(Taboche)쪽도 온통 하얗게 물들었습니다.
올라올때 본 모습과는 눈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새하얀 푸모리(Pumori)를 향하는 또다른 포터들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아마도 곧 고락셉(Gorakshep), 그리고 조금 더 멀리 EBC에 도착하겠죠.
이 멋진 신들의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만이라도 그들의 마음속에 작은 평화가 깃들기를 바래봅니다.
아니 이미 그들은 세속의 물질 문명에 찌든 이방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마음의 평화를 찾는지도 모르겠군요.
이 하얀 봉우리들을 단지 신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므로 어쩌면 이곳에 오는 것 만으로도-비록 그 짋어진 짐의 무게가 얼마 이더라도-그들은 영혼의 안식을 얻을수도...
고지대 바닥의 돌들은 충분한 풍화작용을 거치지 않은 탓에 거칠고 모가 나 있는데 그 위에 살포시 내려 앉은 눈들이 동글동글한 하얀몽돌로 만들었네요.
저 멀리 이제는 제법 많이 멀어진 푸모리(Pumori)와 링트렌(Lingtren)이 떠나가는 나그네에게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 이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들의 모습은 볼수 없으며, 다시 찾지 않는 한 영원히 제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을 추억의 풍경이 되겠죠.
안녕 모리~
안녕 트렌~
모리, 트렌과 함께 했던 요며칠 정말 즐거웠고 예쁜 모습들을 많이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을 만나러 꼭 다시 올께...
경외심을 가지고 다가섰던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봉우리들은 이제는 오랜 친구들처럼 저 멀리에서 저를 배웅해줍니다....
짧은 마음속 이별을 그들과 끝내고 하얀 눈이 내린 이 아름다운 히말라야 자락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오른쪽으론 촐라체(Cholatse), 왼쪽으로는 다보체(Taboche)가 보이는 사잇길로 가면 삼일동안 머물렀던 이 신들의 정원 문턱을 넘어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암석지대가 훤히 드러나 있던 로부체(Lobuche)도 하얀옷으로 갈아입었네요.
올라올 때는 안보였던 노란색 텐트(하얀색 텐트도 하나 있군요)들이 로부체(Lobuche) 아래 설치된 걸 보니 아마도 정상등정을 위해 설치한 베이스캠프인 것 같습니다.
케른 너머로 촐라체(Cholatse)가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설면이 더욱 많아져서인지 올라올때 본 모습보다 제 눈엔 좀 더 예쁘게 보이네요.
앞에 보이는 능선도 온통 하얀 카펫입니다.
두 장면 사이의 간극이 며칠 되지 않음에도 마치 오래전에 바라봤던 것 같은 착각이 생깁니다.
눈 내리는 궂은 날이 없었다면 이렇게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모습 또한 보지 못했을테니 세상 살면서 겪게되는 행복과 불행, 좋은일과 나쁜일의 총합은 결국 0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다블람(Amadablam)과 캉테가(Kangtega) 쪽으로도 올라올때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링트렌(Lingtren)이나 푸모리(Pumori)와는 달리 눕체(Nuptse)연봉들은 팡보체(Pangboche) 인근까지 내려가면서도 작게나마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아니지만 눕체(Nuptse)와도 이젠 이별준비를 천천히 합니다.
갈색의 메마른 풀밭위에 자리잡고 있던 케른(Cairn,Carn)들도 하얀 눈으로 뒤덮혔습니다.
이곳 이후로는 이미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링트렌(Lingtren)처럼 푸모리(Pumori)도 더 이상 볼수 없게 됩니다.
이제는 제가 아니라, 그의 곁으로 향하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슴 떨리는 감동과 흥분을 안겨주고, 예술적 영감을 불러 일으켜 주고,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나누어 주며 영겁의 세월동안 같은 자리에 서 있겠죠.
파란 하늘, 하얀 산, 회색 돌무덤...
그 아래를 지나는 사람과 동물...
뭔가 잘 어울리는 한 장면입니다.
사진 상단은 아마다블람(Amadablam)의 몸체부분이고 그 앞의 언덕 아래로 난 길을 따라가면 추꿍(Chukung)쪽으로 다녀올수 있습니다.
올라오면서 하루 묵어갔던 두글라(Dughla)가 저 멀리 보이고 그 뒤로는 촐라체(Cholatse)와 다보체(Taboche)가 며칠 사이로 다시 찾은 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이곳에서 제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모습인데 두글라(Dughla)에서 고쿄(Gokyo)를 가로로 가로지르며 가는 길이 촐라패스(CholaPass)입니다
촐라패스(CholaPass)를 통해 고쿄(Gokyo)트렉과 합류할수도 있고 그대로 쭉 내려가 한바퀴 돌아서 고쿄(Gokyo)로 갈수도 있고...
이미 어제 결정을 한 사항인데다 촐라패스(CholaPass)로 향하는 트레커가 단 한명도 없기에 언젠가 다시 왔을때의 숙제로 남겨두고 아쉬운 발길을 돌립니다.
마른 관목과 풀위에 내려앉은 눈들이 마치 쑥버무리 같습니다.
쬐그마할때 쑥버무리에다 설탕 뿌려서 참 많이 먹었는데...그리고 막걸리 듬뿍 넣은 술빵도...ㅎㅎ
항상 어무이가 가마솥에 밥 할때 같이 넣고 쪄주시곤 했는데 이젠 마눌이 가끔씩 해주지만 역시 그때 그맛은... 안나죠...
그나저나 뒷쪽의 블랙야크 등짐은 마른풀로 가득찬 푸대(야크먹이)로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무거워 보이는 누렁이의 짐을 보니 왠지 누렁이가 처량해 보이네요.
아마다블람(Amadablam)을 이루고 있는 바위 산등성이의 선들이 눈때문인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여러번 언급되었지만 할배얼굴이 숨어있죠!
페리체(Pheriche)에 벌써 다왔습니다.
다보체(Taboche)와 이어지는 능선의 낮은쪽 암봉들인데 5450이라는 이름 대신에 뭔가 더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네요.
고락셉(Gorakshep)에 비해 고도차나 기온차가 많은것도 아닌데 어제 내렸던 눈의 흔적은 거의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 아마다블람(Amadablam)은 탱보체(Tangboche)와 고락셉(Gorakshep) 사이에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언제든지 볼수 있으므로 이는 마치 하나의 길잡이 같기도 합니다.
캉테가(Kangtega)는 이 글의 끄트머리 부분에서 극적인 노을빛을 받으며 앞발을 든 붉은 말의 모습으로 빛나게 됩니다.
서브트렉으로 임자체(Imjatse, IslandPeak)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추꿍(Chukung)까지 다녀옵니다.
여기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도 괜찮지만 고쿄(Gokyo)까지 가는 길이 너무 지체되는 느낌도 들고, 탱보체(Tangboche)에 꼭 하루 머물고 싶어 간단히 둘러보기만 하고 돌아나옵니다.
왜 사진이 아니고 구글어스냐구요?
아쉽게도 2년전인가 사진백업 하드디스크가 사망하면서 그동안 촬영한 사진들이 많이 소실되었는데 EBC의 전 구간 일부와 추꿍(Chukung)부분, 안나푸르나서킷 일부, 티벳 일부 등등이 영원히 볼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여러가지 복구툴로 시도해봤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복구가 일부 되었더라도 이미지가 많이 손상되었더군요.
기록용 다이어리와 제 마음속 추억으로 방울방울 남아있으니 몇십만원 돈 들여 복구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그대로 가슴에 묻었습니다.
만약을 위해서 망가진 하드디스크는 그대로 보관중이긴 한데 나중에 돈을 아주 많이 번다면 사설업체에 의뢰해볼수도...
예전에 포럼에도 글을 썼었지만 백업은 그때그때 자주하셔야 저같은 꼴 안당합니다!
아쉽지만 구글어스 사진으로나마 추꿍(Chukung)트렉에 대해 조금 살펴보면...
칼라파타르(KalaPattar)에서 보는 것 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지며 시간만 허락된다면 고락셉(Gorakshep)과 더불어 며칠 머물러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최고의 선택이 되실겁니다!!!
내사진... 아까워...
망할 씨게이트...
오후에 접어들수록 흐려져야 하는데 웬일인지 아직은 구름이 많이 몰려오딘 않고 바람만 거세지기 시작합니다.
케른과 케른 사이를 길게 이어주는 타르쵸는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탓에 끊어질 듯 위태롭게 휘어져 나부낍니다.
아마다블람(Amadablam)너머로 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공격하는 회색과 방어하는 파랑, 그 결과는?
일방적인 파랑의 패배입니다.
저 멀리 아득하게 멀어져버린 눕체(Nuptse)연봉들이 오늘 아침 EBC에서 목을 한껏 뒤로 젖히고 바라봤던 바로 그 눕체(Nuptse)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EBC에서 내려온지 하루는 고사하고 시간상으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멀어지다니...
임자콜라(ImjaKhola)를 사이에 두고 나 있는 좌우의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저는 올라올 때, 내려올 때 각기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만 바라보는 풍경들은 그다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아마다블람(Amadablam)의 모습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시각각 변하는데 하늘색만 제외한다면 단지 먹의 농담만으로 그려진 수묵담채화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눕체(Nuptse)연봉들은 이젠 망원으로 땡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습니다.
EBC 이후 시야에서 하나씩 사라져간 푸모리(Pumori), 링트렌(Lingtren), 촐라체(Cholatse) 등에 이어 이제는 눕체(Nuptse)도 요 앞의 작은 고갯마루를 내려가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므로 짧은 마지막 인사를 건냅니다.
안녕~
고층건물(2층이상이면 다 고층건물!)에 철골구조물 같은게 쓰이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볼수 있는데 이걸 어찌 옮겨왔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야크도 아니고 헬기도 아니고 바로...
사람이 직접 어깨에 메고 옮깁니다!
무게가 상상이 되시나요?
제 배낭이 카메라 포함해서 23~25Kg정도 될건데 철골을 어깨에 메고 이곳을 오르다니...
생각만 해도 허벅지와 심장이 터지려고 합니다.
조금 전과 또 다른 모습의 아마다블람(Amadablam)뒤로는 잔뜩 수세에 몰렸던 파란 하늘이 전세를 역전시켜 구름들을 조금씩 몰아내고 있습니다.
구름속에서 캉테가(Kangtega) - 정확히는 6685 - 의 말머리와 말안장 부분이 잠깐 드러납니다.
말안장에 쌓여있는 얼음덩어리가 청록색으로 빛나고 그 옆의 말의 눈동자도 딱 그 부분만 하얀색입니다.
말과 말안장의 모습과 얼마나 유사한지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확인 해보시기를...
아마다블람(Amadablam)도 이젠 구름속에 모습을 감춰버립니다.
이 지역의 날씨는 이제 어느 정도 꿰고 있어서 그려러니 하는 수준까지 온 듯 합니다.
올라오면서 통과했던 통천문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 즈음부터 조금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좁쌀만한 우박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강한 바람에 실려 얼굴을 구타 당할때면 따끔따끔거리며 아프기까지 합니다.
드디어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탱보체에 다 왔습니다.
줄기차게 후두둑 쏟아지던 우박은 금새 그치고 구름에 가려졌던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가 고개를 살짝 내밉니다.
오늘 잘 하면 붉은 노을에 물든 이 봉우리들을 볼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마치 안나푸르나에서 눈 온 직후 신비롭게 반짝였던 마차푸차레(Machapuchare)처럼...
허나...
꼭 한번 이곳 탱보체(Tangboche)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기에 도착하자마자 하루 묵을 롯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오호 통재라...
단체 성지순례객 때문에 모든 롯지가 만석입니다!!!
한 자리라도 어떻게 안될까 부탁해 봤지만 거절당하고, 로컬포터가 머무는 허름한 곳도 상관없다고 말해보지만 고개를 저을 뿐입니다.
어쩌면 일생에 한번 밖에 오지 못할수도, 혹은 기회가 닿아 몇 번 더 올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꼭 하루를 머물고 싶었는데...(이 다짐은 2부에서도 나옴)
차선책으로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언덕 아래에 있던 롯지에 묵거나, 아예 탱보체(Tangboche)를 지나쳐서 그 아래에서 롯지를 잡거나, 아니면 한번 더 롯지주인에게 부탁해보거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데다 이런 결정은 빨리 내려야 하기에 한번 더 롯지주인에게 부탁해 봤지만 단박에 거절당해서 그냥 왔던 길을 되돌아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롯지에 머물기로 합니다.
론니플래닛이었나 어디선가 몇몇 성스러운 날이나 축제기간에 방문할 경우 이런 불상사가 많이 일어나니 반드시 사전에 확인하라고 하긴 한것 같은데 딱 제가 묵는 날에 당첨이라니...
사실 오늘 촐라패스(CholaPass)로 향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탱보체(Tangboche)에서 맞이하는 예쁜 아침풍경으로 위로받으려 했으나 이렇게 무참히 박살났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나중에 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추가 되는거죠 뭐...
그러고보니 다른 지역에서의 트레킹과는 달리 EBC트레킹에서는 일정과 코스의 변경과 가감이 상당히 많군요.
당시의 심정입니다.
옆페이지엔 이에 대한 험한 말이 다수 쓰여있군요!!!
저 뒤로 하얀 구름들이 걸려있는 탐세르쿠(Thamserku)가 괜시리 야속하게 보입니다.
왔던 길로 한참을 되돌아가(게다가 내리막길이니 내일 아침 다시 올라와야 하는) 데부체(Debuche)의 맨 처음 보이는 롯지에 들어가보니 여기도 바글바글합니다.
평소에는 이정도로 붐비진 않을 것 같은 위치인데 상행, 하행 포함해서 위에서 쫒겨난 다수의 트레커들이 모두 이리로 몰린듯 합니다.
오늘은 로부체(Lobuche)에서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기도 했고, 추꿍(Chukung)에 잠시 들렀다 온데다 탱보체(Tangboche)갔다가 데부체(Debuche)로 되돌아오기까지 해서인지 발바닥이 좀 아픕니다.
롯지에다 짐을 풀고 간단히 씻은 후에 침대에 누웠더니 피곤이 한번에 몰려옵니다.
롯지에 많은 트레커들이 붐비고 있어 좀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 일기와 편지를 적고는 그대로 자빠져서 깊은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고쿄(Gokyo)트렉에 대한 기대감, 촐라패스(CholaPass) 포기에 대한 아쉬움, 신들의 정원에 남겨둔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탱보체(Tangboche)에서 쫒겨난 듯한 서러움 등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아마 꿈나라에서도 뒤숭숭 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맑고 깨끗한 이른 아침, 옅은 노랑의 따뜻한 햇살을 막 머금은 아마다블람(Amadablam)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어제의 그 빽도 해프닝 충격은 밤새 많이 누그러 들었지만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탱보체(Tangboche)에서의 아침맞이가 어떻게 보면 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작은 문제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으니...
어휴.. 아쉬워라...
참고로 이곳은 아침에 아마다블람(Amadablam)을 그나마 역광으로 볼수 있고 나머지 봉우리들은 움푹 들어간 분지인 탓에 슬프게도 하나도 못봅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곱씹어봤자 아무 소득도 없는일...
깨끗이 잊고 그나마 이렇게 하루 신세질 수 있었던 것(만일 여기도 만석이었다면 정말 울고 싶었을듯)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롯지를 나섭니다.
오늘 얼마나 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쿄(Gokyo)트렉 어딘가 까지는 가야 하므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어제 올라갔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갑니다.ㅎㅎㅎㅎㅎ
맨 처음 EBC로 향할 때를 포함하면 이 길을 네번이나 걷고 있군요!
눈부시게 하얀 탐세르쿠(Thamserku)가 다시 찾은 저를 반겨줍니다.
어제의 서운한 마음을 괜히 여기에다 화풀이 한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다시 찾은 탱보체(Tangboche)입니다.
여기는 저 아래와는 달리 꽤 높이 태양이 떠올라 눈부신 아침볕으로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저 뒤로는 하얀 콩데-리(Kongde 6187m)가 파란 하늘을 수놓고 있네요.
그림제목 : 루비 귀걸이를 한 블랙야크
저 뒤로 쿰비욜라(KhumbiYul Lha 5761m)가 뾰족하게 솟아있습니다.
쿰비욜라(KhumbiYul Lha)는 셀파족 사람들에게 신성하고 거룩한 산으로 여겨지며, 1980년대에 정상등반을 시도했던 팀이 눈사태로 모두 사망한 이후 그 시도조차 없다고 합니다.
비록 하얀 옷을 입진 않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예쁜 봉우리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빵 아닙니다.
쵸콜릿 아닙니다.
파이 아닙니다.
야크똥입니다.
용도는 아시다시피 난방용인데 소나 야크는 먹은 풀들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해 섬유질이 그대로 배출되는데 이걸 말려두면 아주 좋은 땔감이 됩니다.
고지대에서는 커다란 대바구니를 메고 야크똥 주우러 다니는 애들이 참 많죠.
이제 남체(Namche)방면으로 내려가면 EBC트렉의 메인루트를 완전히 벗어나 서브트렉인 고쿄(Gokyo)트렉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2편에 언급했듯이 탱보체(Tangboche)의 곰빠는 지진, 화재 등으로 인해 몇 번이나 소실되 아직까지도 재건공사가 진행중입니다.
불경이 새겨진 오래된 석판들을 짜 맞추거나, 새로이 가공하는 석공들의 정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마침내는 하나씩 하나씩 제 모습을 찾아가겠죠.
탱보체(Tangboche)에서 비록 아침을 맞이하지는 못했지만 이토록 눈부신 하루를 다시금 맞이할 수 있는 생에 대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보면 어떻고 또 못 보면 어떠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거늘...
하얀 콩데(Kongde)산등성이 아래로 쿰중(Khumjung)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저기를 들르진 않고 아마도 곧바로 고쿄(Gokyo)트렉으로 갈 예정인데 고쿄(Gokyo)트렉을 마치고 돌아올 때 한먼 들러볼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곰빠앞의 작은 마니차를 돌리며 남은 일정동안 아무 사고 없이 많은 것들을 마음속에 담아갈 수 있도록, 이곳 탱보체(Tangboche)에 깃들어 있는 히말라야의 신들에게 빌어봅니다.
탱보체(Tangboche)를 내려서자마자 갑자기 계절이 여름으로 바뀝니다.
아침나절의 그 상쾌하고 선선했던 공기는 뜨겁고 메마르게 바뀌고, 얇은 티셔츠 하나 입은게 다인데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연초록의 숲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과 하루 이틀거리의 풍경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올라올때 건넜던 다리도 다시 건너고...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그 꽃...
Save the Musk Deer!
사향노루에 대해 알아보면...
사향노루 또는 시베리아사향노루(Moschus moschiferus)는 사향노루과의 동물이다.
몸길이 1m, 어깨높이 50cm 가량으로 암수 모두 뿔이 없으며 수컷은 어금니가 특히 길고 커서 상아처럼 입 밖으로 나와 있다.
등은 짙은 흑갈색이고 젖빛의 무늬가 섞여 있다. 뺨·눈·귀 사이에 무늬가 있고, 몸의 아랫부분은 갈색과 흰색이 섞여 있다.
꼬리는 흑갈색이고 배에는 달걀만한 향낭에 사향이 들어 있다.
사향은 향수의 향기를 오래 지속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향수의 소재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흥분 작용과 심장의 수축을 높이는 작용, 남성 호르몬과 같은 작용 등의 약리 작용을 가진 것으로 알려있다.
(위키디피아)
고쿄(Gokyo)트렉 갈림길입니다.
저는 당연히 고쿄(Gokyo)로!!!
쿰중(Khumjung)을 옆으로 끼고 도는 길을 따라 갑니다.
야크를 몰고가는 네팔리(네팔사람)가 제가 방금 내려온 온 가파른 언덕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옆은 절 to the 벽!
아마다블람(Amdablam)은 모두 잊혀져버린 친구들을 대신해 우뚝 솟아 저를 내려다 보며 어제의 그 아쉬웠던 빽도에 서운했던 마음을 어르고 달래줍니다.
괜찮아! 먼 훗날 다시 찾았을 때 꼭 빛나는 아침을 너와 함께 맞을께~
라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사진 가운데 쯤 보이는 언덕(이라기보다는 산)에서 벌써 이만큼이나 왔네요.
아마다블람(Amadablam)은 점점 멀어지지만 새로운 신들의 봉우리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아래 탐세르쿠(Thamserku)의 웅대한 삼각형 정상이 반짝거리는데, 그 모습이 마차푸차레(Machapuchare)를 약간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일반적인 물고기꼬리 모양이 아닌 ABC에서 바라본 모습)
구름에 가려져 어렴풋이 보이는 저 윤곽은 신비로운 느낌을 연출해 줍니다.
맑고 깨끗하게 온전한 모습의 풍경도 예쁘지만, 이렇게 보일듯 말듯 아슬아슬한 모습이 보는 이를 더욱 애태우네요...
캉테가(Kangtega)는 이제 제법 말을 많이 닮아있는 모습입니다만 아직은 뭔가가 부족합니다.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는 고쿄(Gokyo)서브트렉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EBC 메인트렉에서보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마치 예쁘게 꽃단장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두드코시(DudhKoshi)강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었습니다.
돌레(Dole)가기 전에 만나는 작은 롯지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네요.
아...
여기서 또 머물러야 하나, 아니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비가 잦아드는 걸 확인, 보슬비는 과감히 무시하고 질척이는 길을 따라 계속 두드코시(DudhKoshi)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점심을 먹었던 롯지에서 상당히 특이한? 영국인 트레커들을 만났는데 배낭에 모두 장우산이 하나씩 꽂혀 있더군요!
보통은 비를 만나면 방수잠바를 걸치거나 배낭커버를 씌우는데 모두들 우산 장착!!!
참 신기한 장면이었는데 아마도 영국의 기후를 감안하면 이해가 되긴합니다만 바람이 불때마다 우산대를 두 손으로 꼭 잡는 모습을 보니 무척 불편해 보입니다.
돌레(Dole)에 다와갈 무렵, 캉테가(Kangtega)는 얼추 완전한 말의 모양을 갖춥니다.
쫑긋 나온 작은 귀며, 하얀 눈동자며, 코와 등 부분을 포함해 영락없는 말의 모습입니다.
사실 트레킹을 떠나기 전의 사전조사에서 그 어원(말과 말안장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을 읽긴 했지만 고쿄(Gokyo)트렉에 진입하고 나서야 그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일 EBC트렉만으로 끝냈더라면 아직도 캉테가(Kangtega)의 어원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군요.
갑자기 몸이 막 달아오르면서 흥분되고 눈이 빨개지는게 왜 이러나 싶었는데 이놈 때문이었군요!!!
야생 사향노루와 마주쳤는데 이놈 역시 겁도 없고 근처를 지나가는데도 EBC의 붉은다리반시처럼 저를 개무시하며 풀을 뜯습니다.
그나저나 꼬리가 없으니 뭔가 이상한 모양새입니다.ㅎㅎ
탐세르쿠(Thamserku)의 마치 잘려나간 듯한 날카로운 단면이 늦은 오후의 황금빛으로 조금씩 물들어 갑니다.
보통 이 시간대에는 구름이 잔뜩 몰려와 이같은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좀 전에 내린 소나기의 영향인지 대기도 아주 깨끗해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로 느껴집니다.
탐세르쿠(Thamserku)와 이어지는 캉테가(Kangtega)도 하얀 얼음 덩어리가 노란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돌레(Dole)에 도착한 후 롯지 침대에 배낭을 내던지고는 마을 뒷편의 언덕에 올라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물들어 가는 신비로운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후담이지만 롯지주인이 들어오자마자 황급히 나가는 저를 보고선 당황해서 뒤따라 왔었다는군요.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가 붉게 붉게 물듭니다.
바로 제가 그토록 원했던, 저녁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봉우리의 모습을 이제서야 보게 됩니다.
푸모리(Pumori)나 링트렌(Lingtren), 아마다블람(Amadablam)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촐라패스(CholaPass)를 넘어가지 못한 미련도, 탱보체(Tangboche)에서 아침을 맞이하지 못했던 서운함마저도...
그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아니 그 이상!!!
만일 날이 맞지 않았더라면, 아니 잔뜩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그 무게에 못이겨 지상으로 비를 떨구지 않았더라면, 여느 때의 그 잿빛 하늘만 봤을텐데...
붉은 보석과도 같이 빛나는 이 신비로운 모습은 제 기억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지금껏 남아 있습니다.
대자연이라는 신이 조각한 이 거대한 마상(馬)은 어디 하나 부족한 것 없는 하나의 완전한 예술품 같습니다.
마치 앞발을 한번 힘차게 내딛고는 구름속으로 달려 갈 것만 같은 이 생동감 넘치는 봉우리가 왜 세계적인 미봉이라는 이름표를 여태컷 달지 못했는지 의아하기만 합니다.
세계 3대 미봉이라 불리는 마차푸차레(Machapuchare)와 아마다블람(Amadablam), 마테호른(Matterhorn) 모두 두 눈으로 봤지만 제 눈에 일순위는 붉은 노을빛에 물든 캉테가(Kangtega)입니다.
다이나믹하게 변해가는 빛의 스펙트럼에 따라 연노랑에서 진노랑으로, 그리고 다홍에서 빨강으로 시시각각 옷을 갈아 입으며 머나먼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의 눈동자를 그와 같은색으로 물들입니다.
내가 만일 화가였다면, 시인이었다면, 철학자였더라면 이 순간을 어떤 도구로, 어떤 방법으로 표현 했을지 머리속으로 그리며 생각해 보지만 도통 떠오르질 않습니다.
그나마 오랜 취미인 사진에 담아보려 연신 셔터를 눌러보지만 찍어도 찍어도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일몰의 순간에만 100장 정도 찍었으니 고르고 고르고 고른게 이 사진임!!!)
태양이 아래로 조금씩 내려갈때마다 그 빛은 더욱 붉어지고, 이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는 봉우리도 붉게 붉게 물들어 가는가 싶더니 그 빛은 이내 작은 점이 되어 태양과 함께 사라져버립니다.
해는 완전히 넘어가 버리고 붉은 보석처럼 빛나던 마상(馬)은 어느듯 푸르스름한 어둠으로 덮혀가지만 한참동안 저는 멍하니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뭘 하고 있었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 긴 시간이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만일 고쿄(Gokyo)에서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되돌아올 때 이곳에서 한번 더 묵으면 오늘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조건 일정 중 하루를 추가하기로 결정, 이미 많이 어둑어둑해진 길을 따라 롯지로 되돌아 옵니다.
롯지주인장이 미소를 지으며 동양인 아재가 왜 그리도 황급하게 뛰쳐 나갔는지 그 이유를 알만하다는 듯 캉테가(Kangtega)의 노을진 모습은 여기서 바라보는게 최고일거라며 자부심 섞인 목소리로 제게 말하는군요.
그러면서 만일 고쿄(Gokyo)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다시 묵는다면 룸차지(숙박비) 공짜에 밥값도 50%할인 해준다면서 넌지시 제게 의향을 물어봅니다.
이게 웬 떡 입니까!!!
어차피 저는 그리 마음먹고 있었기에 흔쾌히 롯지주인장과 빅 to the 딜 성공!
고쿄(Gokyo)는 서브트렉이다보니 EBC메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데, 역시나 이 큰 롯지에 묵는 손님은 저 한명 뿐입니다.
롯지주인 내외와 같이 단촐한 저녁을 먹은 후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 침낭속으로 들어갑니다.
내일 고쿄(Gokyo)에 도착하면 또 어떤 풍경으로 저를 깜짝 놀라게 할런지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곱고 예뻤던 조금 전의 시간속으로 다시 천천히 걸어갑니다.
-끝-
다소 긴글과 사진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로서 EBC, 고쿄, 지리바자르 트레킹 4편을 마칩니다.
오래전 기억과, 기록용 다이어리와, 지도를 참고로 지명을 적은 관계로 혹시나 틀린 부분 지적해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글을 적다보니 오탈자나 맞춤법이 안맞는게 아주 많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5부 예고]
쿰부히말에서 칼라파타르(KalaPattar)와 더불어 최고의 풍경을 보여주는 고쿄리(Gokyo ri), 그리고 지리바자르(Jiri Bazar)로 향하는 출발점인 루클라(Lukla)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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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궁무진한 관광자원인데 이를 잘만 개발하면 물가가 10배이상 비싼 알프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더군요.
네팔 경제에도 엄청난 도움이 될거고...
그래도 여행자의 입장에선 조금 불편함을 감수할지언정 자연그대로 두는게 제일이긴 하지만 현지인들의 생활과 복지도 생각해야하니..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