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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피아 - 웹소설로 꿈꾸는 세상! - 선, 고거련에게 달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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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ovelpia.com/viewer/1047969
북연의 용성과 고구려의 숙군성은 비교적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용성의 동문을 열고 나가 기나긴 숲을 지나면 바로 숙군성 서문에 다다를 수 있다. 하여 고구려로 갈 채비를 마친 선이 주변을 살피며 동문을 향해 걸어간다.
14년을 살았던 나라. 그런 나라를 떠나려고 한다. 보통은 아쉬울 법도 하건만 선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 결단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나쁜 기억 밖에 없는 지옥 같은 나라니까. 그리 굳게 다짐한다. 다만 이런 지옥 같은 나라에 부모를 남겨두고 떠난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단 한 번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욕망이 14살 소녀의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는다.
어느덧 동문이 보이기 시작하는데...대략 십여 명 정도가 야간 보초를 서고, 성문에는 문지기 두 명이 서있음을 발견한다. 선은 뒤돌아서 품안에 있는 단도를 확인한다. 만일을 위해 준비해온 것이다. 뇌물을 받고 무려 수도의 성문을 열어주는 작자들이 배신을 안 하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허튼 수작만 부려봐. 싹 다 죽여 버릴 거니까.’
결의를 다진 선은 다시금 단도를 품안에 넣고, 문지기를 향해 걸어간다. 이내 그들로부터...
“멈춰라.”
...라는 명령을 듣게 되자, 일단 자리에 멈춰 선다.
“웬 놈이냐!”
이에 선은 침착하게 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자신을 의원이라 소개하며...
“순찰대 중 하나가 중태라 하여 왔소만.”
의미가 전달됐는지, 문지기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하고는 성곽 위에 있는 보초들에게...
“좀 전에 순찰대장이 부상을 입었다 하질 않았소. 열어주겠소.”
이윽고 성곽 위에서 알겠다는 얘기가 내려온다. 마침내 성문이 열리고...
“따라오시오. 안내해주겠소.”
“알겠소.”
선이 성문을 열어준 문지기들과 함께 숲을 향해 걸어간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즈음, 성곽 위 보초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아래로 내려온다. 그리고 성문을 열고 선과 문지기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
숲속(용성과 숙군성의 접경지역).
선과 문지기가 일정간격 떨어져서 서로를 경계하며 걸어가고 있다. 이윽고 문지기가 멈추자 선도 따라 멈춘다.
“동행은 여기까지다. 어서 재물을 내놓아라.”
“알겠소.”
선이 주변을 살피다가, 뇌물주머니를 문지기에게 던진다. 문지기 중 한 명이 주머니를 주워서 뇌물을 확인한다. 이윽고 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무운을 비오.”
선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뒤돌아서려는데, 숲 속에서 십여 명의 보초들이 에워싸기 시작한다.
“이게 뭐하는 짓이오?”
“여기서 죽어주어야겠다.”
그렇다. 문지기들에게 속은 것이고 함정에 빠진 것이다. 선의 시야에 비웃음을 먹은 보초들의 표정이 하나하나씩 전부 들어온다.
“이런 개자식들!”
선이 신속하게 품안에서 단도를 꺼내, 문지기 중 한 명의 목에 던져 죽인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흙을 집어 남은 문지기에게 뿌린다.
“제기랄! 내 눈...내 눈!”
선은 이틈을 타 죽은 문지기에게 달려가, 그의 목에서 단도를 뽑는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는 문지기 목에 갖다 대며, 포위하고 있는 보초들에게...
“와 봐! 어떻게 되는지!”
“오지 마! 오지 마!”
“와 보라니까!”
“오지 말라고, 새끼야!”
그러나 재물 앞에 배신은 쉬운 법. 한명의 입이라도 줄이기 위해 문지기가 죽든 말든 보초들이 다가온다. 이에 선은 재빨리 남은 문지기마저 죽여 버린다. 그리고 그의 호주머니에 있던 뇌물주머니를 최대한 멀리 던지며...
“금수만도 못한 새끼들. 이거나 처먹어!”
뇌물에 눈독을 들이는 보초들이 갈팡질팡하자, 그 틈을 타 자신을 가로막는 보초 한명을 죽여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한편 뇌물에 눈독을 들이더라도, 선이 고구려로 도망치면 골치 아파지기에 절반은 그녀를 뒤쫓기 시작한다.
...
선은 전력을 다해서 도망친다. 뒤쫓는 보초들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부상을 당하고, 북연의 순찰대의 화살에 맞을 뻔 하고, 발목을 접질려 절뚝거리며 걷고. 그렇게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던 선은 결국 발을 헛디뎌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의식을 잃는다.
한 시각 후. 선의 눈꺼풀이 열리고 닫히길 반복한다. 이윽고 그녀가 정신을 차린다.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는데, 나무와 돌에 긁힌 타박상이 팔다리에 수두룩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쫓고 있던 북연군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인데...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쓰라린 자신의 팔다리를 주무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호...호랑이...”
집채만 한 ‘북명 호랑이’(지금의 백두산 혹은 시베리아 호랑이로 추정)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윽고 호랑이가 괴성을 지르자, 그 특유의 저주파 때문에 온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기 힘들 따름이다.
‘전쟁터에서 야영할 때도 본 적 없는 호랑이를 왜 하필 지금...’
엄청난 공포가 엄습해온다. 손발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오줌이 절로 흘러내리지만,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며 호랑이를 정면으로 노려본다. 호랑이는 뒤를 보이는 상대에게는 무조건 달려들지만, 자신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상대에게는 달려들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선은 동물처럼 네발로 땅을 짚으며 호랑이를 노려본다. 한동안 선과 호랑이 간에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호랑이가 다시금 괴성을 지르자 이번엔 선도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섣불리 덤벼들지 못 하게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엔 선의 판단이 틀렸다.
선의 고함을 듣고 흥분한 호랑이가 그르렁 거리더니, 앞으로 달려들기 위해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을 뒤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앞으로 달려들어 선을 공격하려던 순간...
‘휘이잉 팍.’
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이 호랑이의 앞발 바로 앞에 꽂힌다. 호랑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르렁거리자 이번엔 다른 앞발 바로 앞에 화살이 꽂힌다. 화살을 쏜 이의 정체는 고구려 숙군성의 성주 고구. 주변에는 감찰관 갈로맹광과 백여 명의 순찰대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윽고 호랑이에게 퇴로를 열어준 채로 몰이를 시작한다.
“어흥!”
호랑이가 괴성을 지르자 순찰대 중 일부가 땅에 주저앉거나 몇몇은 뒷걸음질 친다. 그러나...
“물러서지 마라!”
고구의 지엄한 명령이 떨어지자, 주저앉거나 뒷걸음질 치던 순찰대가 다시금 전열을 정비한다. 고구가 다시 쏜 화살이 호랑이 왼발 바로 앞에 꽂힌다. 순찰대가 병장기를 치켜들고 포위망을 좁혀온다. 결국 호랑이가 주변을 살피더니, 퇴로를 통해 도망친다.
“쫓지 마라.”
고구의 명령이 떨어지자 순찰대가 치켜들고 있던 병장기를 내리고 자리에 멈춰 선다. 고구와 갈로맹광이 선에게 다가간다. 혼이 빠져나간 듯 보이는 선의 얼굴.
“너. 괜찮습니까?”
선이 서서히 고개를 돌려 갈로맹광을 바라본다. 검붉은 얼굴에 큰 코. 두터운 입술. 거대한 덩치. 태어나 처음 보는 이국적인 외형. 결국 호랑이를 보고도 버티던 선이 갈로맹광의 얼굴을 보고는...두려움 때문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갈로맹광이 선의 몸을 흔들며...
“너. 괜찮습니까? 정신 차립니다. 정신 차립니다!”
하지만 선은 이미 의식을 잃었고...
고구의 시야에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몸 상태가 들어온다.
“부상이 심해보이오. 치료를 해야 할 듯싶소이다.”
“알겠습니다. 성주, 나 갈로맹광이 데려갑니다.”
갈로맹광이 선을 자신의 등에 업는다.
...
숙군성으로 향하는 숲속 길...
고구와 갈로맹광, 백여 명의 순찰대가 숙군성으로 향하고 있다. 선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채, 갈로맹광의 등에 업혀있다.
“어찌하여 수고를 자처하시는 게요. 이 아이는 휘하군사들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소.”
“괜찮습니다.”
고구가 갈로맹광을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갈 따름인데...마찬가지로 아무 말 없이 걸어가기만 하던 갈로맹광이 갑자기 말문을 연다.
“이만한 누이가 있었습니다.”
“갈로 공께서 말이오?”
“고구려로 오기 전 일입니다.”
고구가 갈로맹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수년도 더 된 일입니다. 허나 똑똑히 기억납니다. 내나라 전쟁이 잦았습니다. 적의 칼이 내 누이를 난도질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누이를 등에 업었습니다. 한참을 달렸습니다. 미친 듯이.”
고구가 갈로맹광을 향해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결국은 못 살립니다. 내 마음...무너져 내립니다. 그렇게 무너진 마음...다시 쌓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고구가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는 갈로맹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갈로맹광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본 적은 없지만, 미래를 약속한 연인을 전쟁의 모순 때문에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녀...
연인을 떠나보내기 전까지 전쟁의 화신과도 같았던 고구이기에, 완전히 쫓아 보내려하나 잠시 눈앞에서만 사라질 뿐...그렇게 평생을 괴롭히고 있는 죄책감이, ‘애써 미소를 보이는 갈로맹광의 얼굴’이라는 모습으로 또 다시 나타나 고구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다.
‘내 욕심 때문에 죽은 사람...내가 사랑하는 사람...내 곁에 없는 사람.’
무거워진 발걸음이 숙군성으로 가는 길을 한없이 멀게 끔 느껴지게 한다. 마치 고구와 그녀의 죽은 연인과의 거리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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