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분이나 댓글을 달아주시는 덕에 올려보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아무거나라도 떠오르는게 있다면 댓글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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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화분이 던져저 깨어졌다.
바닥에는 온통 깨어진 화분들이었다. 성난 젊은이들이 그들의 분노를 엉뚱하게도 화분가게에 풀고 있었다. 화분가게의 주인인 듯 보이는 사람은 말리지도 못하고 자포자기한 채로 멍하니 있었다. 어차피 팔릴 기미도 안보이는, 이제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식물이었다. 근처를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년남자가 난장판이 된 화분가게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남자는 깨어진 화분 중 하나를 집어들고는 주인에게 '얼마죠?' 하고 묻는다. 대답없는 주인에게 지폐 몇장을 건네고는 화분의 조각을 맞추어서 손에 꼭 쥔채로 걸어갔다. 테잎으로 꽁꽁 싸매진 채 화분은 그의 아파트 가장 양지바른 곳에 놓여졌다.
태양열로 작동하는 플라스틱 식물이 남자노인이 있는 병실의 유리창 앞에서 팔랑거리고 있다. 칼에 찔린 자리는 비록 상처가 깊긴했으나 내장을 빗겨가 노인의 생명에는 다행이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실제 전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남자노인이었기에 상처에 보다 잘 적응해나가서, 이제는 혼자서도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더 많이 변한 사람은 보호소장이었다. 관료적이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던 그가 이제는 발로 뛰어다니며 노인들의 말을 들었다.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걱정하기도 했으나 당연히 그 모습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몇일 뒤, 보호소장은 중대발표가 있다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노인들은 긴장한 채로 하나 둘 모였다. 이내 모습을 나타낸 보호소장의 엄숙한 표정이 긴장을 더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자 보호소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일어난 몇 개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하여 먼저 깊은 사과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노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누구를 원망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많은 우리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왔음에도 저는 오직 기계적으로만 일을 처리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런 태도가 지금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것에 적지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우리 보호소의 활력을 불어넣어 다시 보호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생각해왔으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것 외에는요."
보호소장이 옆에 놓여있던 박스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 맥주병이었다. 곧 노인들의 환호성이 뒤를 이었다. 보호소 밖에서도 구할 수 없었던 술을 여기서 마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어찌나 많이도 구해놨는지 진탕 마시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노인들의 즐거움이 곳곳을 채웠다. 마치 한 순간에 20대로 돌아가 버린듯, 그들은 미친듯이 춤을 추며 노래했다. 그러나 존은 그러지 못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라, 술을 마시면 상처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술과 파티를 크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 때 만큼은 술을 못마신다는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런 존을두고 매리가 혼자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남자노인은 자신 때문에 매리가 파티를 즐기지 못하는게 미안해져, 괜히 심술이 났다.
"자기들이 온 세상의 중심이라도 되는 것 처럼 노는구만! 현실은 정 반대면서 말이야."
매리는 그의 마음을 알고는 웃음이 났다. 그녀는 그를 끌어당겨 춤을추기 시작했다.
"왜 이래요?"
남자노인이 겸연쩍은 퉁명스러움으로 답했다.
여자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었다. 남자노인은 그녀에게 볼품없이 끌려다니다 안되겠던지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 그를 잡아당겨 여노인은 키스했다.
남자노인은 여자노인과 함께 누워있으면서도 도통 잠이오지 않았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다. 파티도 이제는 조용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즐거운 분위기였던 보호소와, 비록 술은 못마셨지만 여자노인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놓고도 남자노인은 씁쓸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도 공부하지 않고 하루를 제껴버린 기분이랄까. 오늘 누린 행복이 그대로 자신에게 부담감과 걱정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런 남자노인 옆에서도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여노인을 보니 조금은 안정되는 듯 했다. 갑작스레 느껴진 목마름에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인듯 아찔함이 느껴졌으나 금방 지나갔다. 그런데,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자 다시금 찌릿, 어지러웠다. 이번에는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간 그의 눈에는 방의 구석에서 아른아른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여자노인을 부르려했지만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른아른 한 것은 눈을 비비고 머리를 흔들어도 없어지지 않았다. 흐릿한 정신 속에서도 그는 온 힘을 다해 움직였다. 벽지의 음영에 숨겨진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온 힘을 다해 그곳에 손을 뻗치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여자노인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아침이었다.
"일어나요, 해가 중천이에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노인은 어리둥절 했다.
"어제 무슨 일 없었어요?"
"무슨 일 이라뇨?"
"...아냐, 아무것도 아니오."
남자노인은 띵한 머리를 흔들었다.
"커피 마실래요?"
남자노인은 커피를 건네받고 조금 들어켰다. 그런데 커피맛이 이상했다. 의아해하며 한 번 더 들이키자 참을 수 없는 비린 맛에 토악질이 났다.
"윽...웩!"
"아니 왜 그래요?"
대답하는 여자노인의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피로 충혈되더니 이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가 마신 커피잔에는 검붉은 피가 담겨있었다. 속이 요동치며 울렁거렸다.
'쿨럭, 콜록,...'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노인은 깨어났다. 여전히 밤이었다. 노인은 벌떡 일어나 코를 막고 여노인이 덮고 있던 이불을 모두 걷어 구석의 구멍을 틀어막았다. 방안의 유리창을 열어보려했으나, 애초에 열 수 없는 창이었다. 유리를 향해 의자를 집어던졌다. 의자가 맥없이 튕겨져 나왔다. 유리에는 흠집도 없었다. 여노인은 이 난리통에도 곤히 자고 있었다. 여노인을 세차게 흔들었으나 깨어나지 않았다. 무슨일이 생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노인은 생각했다. 매리가 어디 이상이 있지는 않은가 걱정했으나 그렇진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 했다. 구멍에서 흘러나오던 가스 때문인것 같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무슨일인지 빨리 알아보아야 한다. 노인은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경비원이 방독면을 쓴 채로 그의 쪽으로 오고 있었다. 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무너지는 마음에 울컥했다. 경비원과 눈을 마주칠 뻔 했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점점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곤 그가 있는 문 앞에서 멈추었다. 낌새를 차린 것이 분명했다. 존은 계속 조금씩 새어나오는 가스에 숨을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지직, 움직임 발견, 지직'
무전기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문고리가 조심스럽게 돌아갔다. 경비원이 살금살금 방안으로 들어왔다. 경비원이 이불도 없이 홀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노인을 보고 깜짝놀라 총을 빼들고 황급히 주위를 살피자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남자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은 안도하고 무전을 쳤다.
'지직, 이상없음, 지직'
그 순간 남자노인은 경비원을 빠르게 덮쳤다. 놀란 경비원이 허둥지둥 반항했으나 이미 노인의 팔에 목이 감긴 뒤었다. 노인은 권총을 뺏고는 그의 방독면을 벗겼다. 안면이 있었다. 8살배기 아들이 있다던 샘이었다. 노인은 그의 입을 틀어막곤 덮어뒀던 이불 속으로 그를 쳐박았다. 허둥대던 그는 이내 잠잠해졌다. 숨이 차올라 노인의 얼굴은 폭발할 듯 벌개져 있었다. 노인은 방독면을 끼고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조금 호흡이 진정되자 노인은 경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때 무전에서 보호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직, 아무이상 없나?'
이상이 있다면 우리에게 수면가스를 풀고는 감시하려드는 니들쪽에 있겠지, 노인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샘, 응답바란다.'
시간이 없었다.
"샘? 응답바란다. 아무이상없나?"
다급해진 보호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샘!!"
그 순간 CCTV에는 경비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변장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CCTV를 향해 OK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무전기가 잠잠해졌다. 남자노인은 일단 안도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 같은 층에 있던 또 다른 경비원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마주 본 채로 한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경비원의 눈은 그의 목덜미를 향했다. 노인의 주름잡힌 목이 선명하게 보였다. 경비원은 빠른 손놀림으로 총을 뽑아 그에게 겨눴다. 노인은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누구야! 신원을 밝혀라!"
경비원이 외쳤지만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야! 말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노인이 여전히 대답하지 않자 경비원이 총을 겨눈채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경비원의 손이 노인의 방독면을 벗기려는 순간 노인은 경비원의 오른손을 올리고 있던 왼손으로 홱 낚아챘다. 노인은 자신의 차고 있던 총을 빼려했으나 놀란 경비원의 발길질이 더 빨랐다. 정강이가 부러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노인은 경비원의 오른손을 놓지 않았다. 경비원은 마구잡이로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한발은 천장에, 한발은 숙소의 문을 뚫고 들어갔다.
"퍼겅!"
"으억!!"
권총의 육중한 폭발음과 함께 비명이 울렸다. 경비원의 쏜 한 발은 그 자신의 발에 꽂히고 말았다. 노인은 그의 발을 있는 힘껏 발로 내리쳤다. 경비원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노인은 그의 머리를 발로 차고 방독면을 벗겨던졌다.
"이런 씨발! 당장 저 새끼 잡아!"
보호소장의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울렸다. 노인은 보호소장이 있는 3층으로 내달렸다. 방독면을 끼고있어 그냥 숨쉬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는 뛰는것을 멈출 수 없었다. 노인은 3층에 도달하자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골라가며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레 모퉁이에 붙어서 복도를 살폈다. 그 때 노인의 쪽으로 총알이 날아왔다. 총알이 방독면을 뚫고 노인의 볼을 스쳤다. 피가 뿜어져나왔다. "악!" 노인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가스가 새어 들어오면서 노인은 정신을 차리기가 더욱 힘들었다. 총을 쏜 자의 조심스런 발소리가 가까워져왔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노인은 정신을 추스리려 애썼다. 노인이 몸을 일으키려하자 현기증이 노인을 덮쳤다. 다리가 풀리며 노인은 그대로 쓰러지려 했다.
"팡!" "헉!"
갑작스런 총소리가 노인의 총에서 터져나왔다. 쓰러지며 자기도 모르게 쏜 총알이 경비원의 가슴팍을 뚫었다. 억세게도 운 좋았다. 노인은 자신의 총소리에 놀라 어리둥절 하다가 벌떡 일어나 보호소장의 방문을 열어제쳤다.
노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보호소장의 방에는 CCTV와 무전기만이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이미 모두 빠져나간 뒤였다.
'헛지랄을 했군...' 노인의 몸에 힘이 풀렸다.
"지직, ...전원 철수하라. 곧 가스를 살포하겠다."
멍하니 서있던 노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비원들의 출입문을 열어둬야 한다. 노인은 쓰러져있는 경비원의 방독면을 벗겨들고 또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한계였다. 노인의 옆구리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뚫린 방독면사이로 가스가 세어 들어왔다. 방독면을 끼고 있으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도 않았다. 노인은 결국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러나 그가 들고있던 방독면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철컹!, 철컥, 철컥'
어디인지 모를 출입문이 봉해졌다. 이제 나갈길은 없다...노인은 기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으로, 여노인이 아무것도 모른채로 잠들어 있는 곳으로. 노인은 문을 밀어열고 여노인에게 기어갔다.
"가스살포 10초전"
그가 차고있는 무전기가 소리를 냈다. 노인은 그가 들고있던 방독면을 여노인에게 주섬주섬 씌웠다. 손에 힘이 안들어가 자꾸 미끄러졌다.
"가스살포 7초전"
노인은 자신의 방독면을 벗어던지곤 계속해서 여노인에게 방독면을 씌웠다. 그와 무전기 빼곤 아무것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4초전!"
"딸깍!"
여노인의 방독면이 채워졌다. 노인은 그대로 쓰러져 바닥에 드러누웠다.
"3초전, 2초전, 1초전, 타다당!!"
무전과 함께 노인의 정신도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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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