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정의 뒤뜰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3학년들의 교실은 1층.
창가 자리에 앉으면 가지마다 조롱조롱 달린 앵두가 손에 잡힐 듯 고스란히 보였다.
쉬는 시간에는 저마다의 나무에 아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빨간 입술들 속의 빨간 앵두들. 달짝지근한 웃음소리.

그리고, 유월의 공기로 호흡하는 너와 나의 시간.

너는 체육시간에도 매번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였다. 나는 그래서 운동장에 서서 가끔 교실을 올려다보곤 했다. 창가에 앉아 있는 너를 보려고.
너는 책을 보다가도 이따금 고개를 들어 운동장을 내다보곤 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 싶었지만 한번도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가 배앓이를 해서 체육시간에 교실에 남게 된 날이 있었다.
열린 창으로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벗어두고 간 가벼운 하복들이 흩어져 있었다.
조용한 교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른하게 들렸다. 나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너를 보았다. 네가 펼쳐둔 책의 페이지가 살랑거렸다.
  
    
"저기, 말야..."
  
    
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가슴이 도곤도곤 메조포르테로 울린다.
    
    
"우리 앵두 따러 가지 않을래?"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너는 어쩐지 말끄럼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다음 순간 너는 책을 덮는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내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심장박동은 크레센도, 크레센도, 크레센도, 점점 더 세게.
  
    
"가자-"
  
    
너는 앵두를 따서 내가 펼쳐들고 있는 체육복 상의 위로 떨어뜨린다. 고개를 들면 자잘한 잎 사이로 유월의 햇빛이 수없이 반짝인다.
네 얼굴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간질거린다.
  
    
"손이 닿는 곳의 앵두는 이제 없는 것 같아."
  
    
앵두는 이제 쉬는 시간마다 매달려 있던 아이들의 손에도 상하지 않은 것들만 남았다. 우리 둘은 앵두나무를 한참동안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힘껏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 그것들은 더 예뻐 보인다. 그 때 내가 말했다.
  
    
"무등 탈 수 있겠니?"
  
    
나는 몸을 숙이고 앉았다. 눈이 동그래진  네가 마냥 보고만 있자 나는 또 말했다.
    
"무등을 타면 딸 수 있을거야. 난 괜찮으니까."
    
"그치만 나 무거울 텐데."
    
"이래뵈도 너 정도는 거뜬하니까."

    
이런 대화가 잠시 오고가고 너는 약간은 망설인 후 내 어깨에 올라탔다.  
내 목이 살짝 아파올 정도로 꼭 안은 너, 그리고 천천히 일어서라며 떨리는 너의 목소리.

어느덧 앵두가 너의 코 앞에 있었다.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너도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너는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무등에서 내려왔을 때 너는 내어깨에 붙어있는 나뭇잎을 떼어주었다. 다정하게도. 
    그리고 우리는 화단에 아무렇게 걸터앉아 사이좋게 앵두를 나눠먹었다.
입 속의 앵두씨를 멀리 뱉는다. 더 멀리 뱉는다. 너는 참 잘 웃었다. 웃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이윽코 종이 울렸다. 
    

종소리가 멀 리 멀 리. 
    

교실로 돌아가자 아이들의 땀냄새가 났다. 
    품에 안은 체육복에는 빨갛게 앵두물이 들었다.


*

    
열여섯살의 유월. 나는 운동장에 서 있다. 창가자리에 앉아 있는 너를 보기 위해.
너는 책에서 고개를 들어 운동장을 내다 본다. 나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손을 흔든다.
    


너도,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