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로마에 다녀왔습니다. 평생을 꿈꿔왔던 로마 여행이었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니 여독만 잔뜩 쌓인 채 좀 얼떨떨하네요.

그래도 이렇다 할 사건 사고 없이 예정한 대로 잘 다녀왔으니 그것만으로 큰 성과이지요.

로마에 첫발을 내디디고 나서 놀란 것은 수많은 인도인, 터키인 등 서남아시아인과 흑인들이었는데요.

로마제국 시절부터 수많은 나라와 교류해 온 흔적인 걸까요? 실제로 제가 투숙한 호텔의 프런트와

룸서비스, 청소 등을 담당한 직원들은 모두 인도 청년들이었습니다.

객실료가 꽤 비싼 호텔이어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호텔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커다란 건물 한 층만 빌려서

호텔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방에서 나오면 서너 명의 인도 청년들이 프런트 데스크에 몰려 있다가

고개를 돌려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데, 처음에는 진짜 적응 안 되더군요. 하지만 떠날 때가 되니까

제자리에서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인도 청년들이 기특하고 믿음직해 보였어요.

호텔이 로마의 중앙역인 테르미니역 가까이에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주변은 온통 이민족들의 집합체인 것 같았어요.

중국 식당, 터키 식당, 인도인이 운영하는 슈퍼, 흑인 노점상 등. 콜로세움 같은 관광지에 가면

입구에 늘어선 관광객들을 상대로 조잡한 물건이나 암표를 파는 사람들 가운데 현지인은 한 명도 없고

모두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이민족들이더군요. 이탈리아는 인건비가 싼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리카의

노동자들을 제한 없이 받아온 결과,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를 가진 나라가 됐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니 연말에 친구가 추천해서 읽게 된 소설 <세 갈래 길>에서도 인도의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에서 건너온

카말이라는 청년이 등장했어요. 인도 정부가 시크교도에게 가하는 폭력을 피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까지 건너온.

끊임없이 독립을 원하는 시크교도들을 인도 정부가 잔인하게 탄압하고 학살하는 일은 이미 꽤 오래된 일이지요.

책에서도 이 부분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실제로 시크교도들은 아이가 크기를 기다려 아이를

서구 사회로 내보낸다고 해요. ‘너라도 모진 탄압에서 살아남아 서구 사회에서 잘살아가려무나.’ 하는 바람을 담아.

최근에는 이탈리아 정부도 넘쳐나는 이민자들로 인해 불법 체류자들을 철저히 단속해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고 하네요.

단기 여행자의 시선으로 이탈리아인들이 이민자들과 어느 정도로 잘 어울려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하지만 이미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로서도 이탈리아의 이민 정책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삼 느낀 거지만 여행을 앞두고 들입다 여행 블로그만 뒤질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연히 읽게 된 소설 <세 갈래 길>을 통해

온갖 이민족의 집합체인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역시 책이 주는 효과겠지요?

<세 갈래 길>에서 시크교도 카말은 시칠리아에 사는 처녀 가장 줄리아를 도와 인도와 시칠리아 간 교역을 이끄는 데

큰 몫을 해냅니다. 풋풋하고 씩씩한 줄리아의 사랑도 얻어내지요. 소설 속의 카말은 매우 매력적인 청년인 듯해요.

글을 쓴 작가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이탈리아 처녀와 인도 청년의 순수한 결합이 꼭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해요.

실제로 가서 눈으로 확인한 이탈리아는 인종을 초월해서 다양한 계층과 연령층이 어울려

역동적으로 움직여 가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특히 로마가 그랬어요.

역동적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로마라는 곳,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