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를 당하던 한 중학생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고,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받은 것이라면 욕설과 폭력뿐.

그래서 길을 걷다 자기 또래의 아이를 보게 되면 초면인데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죠. 자기 얼굴을 보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그 아이가 자기를 때릴 것 같다는 생각에.

 그애가 가장 무서워하는 종류의 인간은 술주정뱅이도, 조직폭력배 건달도, 정신이상자도 아니었어요. 또래의 아이. 정말 외롭게 짝이 없는 공포증이었어요.

그런데 특별한 일은 어느 토요일 주말에 일어났습니다.

여자아이가 길을 걷던 중, 보도 위에 지갑이 하나 떨어져 있는 걸 보게 되었어요. 주워서 열어보니 거기에 100만원이나 들어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 아이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 지갑을 파출소에 갖다줬어요.

파출서의 순경님은 여자아이가 준 지갑을 열어본 순간, 거기서 신분증을 함부러 훑어보더니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폰에 대고 하는 양을 들어보니, 지갑의 원래 주인은 이미 지갑을 분실 신고한 상태였고 그에게 지금 이리로 오라는 말인 듯했어요.

여자아이는 주인에게서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파출서에 기다렸습니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고마워해줬다는 것은 살아갈 용기를 조금이라도 주는 경험이니까요.

그런데, 파출소로 찾아온 사람은, 여자아이 또래의 남자아이였습니다.

여자아이는 갑자기 겁에 질려버렸어요. 식은땀이 났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남자아이가 자기 지갑을 왜 네가 갖고 있냐며 두들겨 패는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자아이의 속사정은 모르는 채,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또래 아이에게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여자아이는 갑자기 엄청난 동요를 느꼈습니다. 유치원적엔 이와 같은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아득해서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게 그 당시 어린 자신이 밤에 쿨쿨 자면서 꾸웠던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10만원을 그 아이에게 주려 했죠. 하지만 여자아이는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오만원 지폐 두 장이 너무나 무서웠고, 본래와는 다른 의미로 값비싸 보였습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게 "그럼 내가 먹을 거라도 사줄게." 라고 했습니다. 여자아이는 사양하려 했지만, 남자아이가 토도라져서 "정말 그럴거야?" 라고 하자 그러겠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둘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여자아이에겐 정말 이례적인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게 순간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았던거였죠.

남자아이는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10만원을 이 여자아이에게 다써줄 심산이었습니다.

그렇게 네 번 만나며 식사를 하고, 인형뽑기 가게에서 같이 놀자 둘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둘은 친구가 되었어요.

행복했어요.

불행한 현실은 그대로여도, 여자아이는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운명적이게도 그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한 학교에 만났어요.

여자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죠. 둘은 반이 달랐지만, 여자아이는 늘 쉬는 시간이 되면 남자아이가 있는 교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면서 남자아이의 면전에 대고 너무나 정어린 말들을 쏟아냈죠. 다른 사람은 없는 것처럼 남자아이에게 온갖 애정을 토해냈어요.

문제는 남자아이가 따로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나서부터도 그게 그대로였단 것이었습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게 이제 자신을 만나려 하지말라고, 간곡하게 말해보았고, 제발 그만 다가오라고 부탁했고, 애원했고, 끝내는 협박했습니다.

그래도,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와 있고 싶어했어요.

자기 여자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게 대놓고 폭력을 썼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다보는 앞에서 따귀를 때렸죠,

남자아이는 이정도면 나에게 정떨어졌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자리를 피했어요.

하지만 그가 계단 층계를 빗자루로 청소하고 있던 중, 아랫층에서 여자아이가 자기를 보곤 뛰어오는게 아니겠나요? 순간 자기에게 따귀를 날리러 오는 거라 믿고 싶었지만 그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니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자아이는 미안하다고, 나도 자제할 테니까 나랑 계속 있어주기만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남자아이는 화가 치밀어서, 여자아이를 확 밀쳤습니다. 여자아이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죠. 떼굴떼굴, 뽀각, 털썩.

그렇게 그 아이는 팔이 골절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장애가 생겨버리고만 거지요.

원래라면 남자아이가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맞았겠지만, 경찰서에서 사건조사를 할 때 경찰이 재차 말해보아도 여자아이는 받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괜찮다고요. 대신 남자아이에게 날 이렇게 만들었으니 이제 떠나지 말기? 라는 말을 했습니다.

남자아이는 결국 여자친구와는 결별하게 되어버렸습니다. 학교에서의 인식도 안좋아졌죠. 그리고 점점 여자아이가 싫어졌습니다. 자기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문자하고, 카톡하는 여자아이가 실물이 나버렸습니다.

결국,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어느 건물 옥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말했죠.

"같이 죽자."

같이 이 옥상에서 뛰어내리자, 내가 셋을 셀테니 그때 동시에 번지점프하자, 이렇게요.

여자아이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이러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애원했어요.

"그럼 나 혼자 뛰어내릴 테니까 넌 그거나 봐."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옥상 난간으로 넘어갔습니다.

남자아이가 카운트 다운을 세기 시작했어요.

"하나, 둘... 셋!"

여자아이는 뛰어내렸습니다. 있는 힘껏. 천국에서 남자아이가 자신의 멀리 뛰기 실력을 칭찬해줄거라 믿으면서.

하지만 추락하면서 여자아이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혼자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끝났구나."

남자아이는 그렇게 한마디하고 난간밖에서 다시 옥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가 1층으로 왔어요.

남자아이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건물 밖으로 나와 여자아이가 떨어진 자리로 갔습니다. 처음했던 간접살인이기에, 자기 결과물을 감상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남자아이는 놀라서 심장이 멎을 줄 알았습니다. 거기의 여자아이가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몸이 망신창이가 된 채, 여자아이는 끙끙 대며 남자아이를 불렀습니다.

남자아이는 도망갔습니다. 맹렬히 달렸습니다. 살인자가 될 각오는 해두었지만,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버릴 각오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정도로 망가졌으니 곧 죽겠지라며 그때까지만 참아봐라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혼란스럽군요.

하물며 더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추후, 여자아이가 어느 행인의 신고로 인해 소생해버렸던 겁니다.

남자아이는 법적인 지식이 없었기에, 과연 자신에게 살인미수죄가 적용될 수 있는걸까 하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꿈에서나, 모든 시공간에서요.

하지만, 여자아이는 남들에게 그냥 혼자 투신자살을 시도해봤던 거라며, 남자아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남자아이에게 매달렸습니다. 집착이 강해지고, 더 강해졌습니다.

남자아이는 견딜 수 없었어요. 죄책감과 부담감, 압박감, 고마움, 경멸들로.

... 결국, 남자아이는 마지막으로 여자아이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 어느 인적 없는 산속을 여자아이와 걸으면서, 남자아이는 곤혹스러운 기분을 삭았습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여자아이가 물었습니다. 두개골의 한쪽 눈두덩은 함물되어버렸었기에, 그쪽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죠.

"너에게 줄 깜짝 선물로."

남자아이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휴대폰은 안가져온 거지?"

어차피 이곳은 통화권 이탈지역이고, 저번에 여자아이의 휴대폰을 던져서 깨버린 적이 있었기에 휴대폰은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었지만 만일을 대비해 확인차한 질문이었습니다.

"응! 없어어어!"

"그럼 핸드벡에 있는건 뭐야?"

여자아이의 허리엔 작은 핸드백이 하나 어깨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분홍색이었죠.

"이건 내가 너에게 줄 깜찍 선물을 위한 것."

남자아이는 기가차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깊이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 다짜고짜 여자아이의 한쪽 손목에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수갑의 반대쪽 구속구는 근처에 있던 대나무에다 채웠어요. 그 대나무의 높이는 10미터 짜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할 동안, 여자아이는 조금의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아이는 마지막으로 여자아이에게 물었죠.

"나한테 할말 있어?"

"좋아해."

"닥쳐."

남자아이는 가방에서 부엌 칼을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걸로 여자아이의 성대가 있을 곳을 베어버렸죠. 여자아이는 목에서 피를 뿜었습니다.

"난 이만 간다. 잘 뒈져라."

피를 흘리는 여자아이를 남겨두고, 남자아이는 유유히 산을 뒤짚어갔습니다.

이제 곧 과다출혈로 죽을 게 자명합니다. 설사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한들, 성대가 망가졌으니 소리쳐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애초에 그곳은 사람이 다니지 않을 곳이었던데다, 마실 물도 없고 식량도 없습니다.

이제야 마음편히 잘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4개월 후.

남자아이는 갑자기 여자아이의 유골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여자아이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뉴스 선정 취향을 고려해볼 때 뉴스에 보도될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뉴스를 청취해보았지만 그런 보도는 코빼기도 없었기에 절대 여자아이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리는 없겠지요.

"이 길이 맞더라? 뭐 맞겠지. 아님 말고. 그 년 뼈색깔좀 보러 오기 겁나 힘드네."

그리고 마침내. 남자아이는 추억의 장소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기겁했습니다.

"..왔..어...?"

"........"

여자아이는 살아있었습니다. 옷이 모두 헤지고, 머리는 까치머리를 방불케 하고, 몸은 비쩍 말랐지만.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왜... 살아있는 거야?....."

생존의 원인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남자아이는 그렇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여자아이가 묶인 곳을 보니, 거기에 곤충을 모아서 태워 죽이는 포충기가 있었습니다. 회전형 손잡이가 달린 걸 보니 인력으로 전력을 무한 생성할 수 있는 제품인가 봅니다. 그리고 여자아이 근처에 있는 어린 나무에는 삽관이 꽂혀 있었는데, 거기서 물이 한방울씩 떨어져 분홍컵에 고이고 있었습니다. 아마, 타죽은 곤충 사체와 컵에 고인 물로 연명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에는 흉터가 있었는데, 지혈할 붕대와 약품, 아니면 봉합실을 갖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증거로, 약병이랑 다 누더기인 천조각, 그밖의 의료키트가 낙엽들 사이로 보였습니다. 이게 다 핸드백이 볼록 나온 배안에 품고 있던 것들이겠지요.

"와...죠...써"

"... 난 널 구해주지 않을 거야."

"그 럼... 애... 다시... 도라왔...어?"

남자아이는 울었습니다. 찔린 열상 상처에서 빨간 피가 쏟아지듯, 눈물이 터집니다.

"여기다... 묵을 메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