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소개돼

현대 한국문학의 독창성을 널리 알린 고요한의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저자소개_ 고요한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단편소설 〈종이비행기〉가 번역 소개됐다.

표제작인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제목처럼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욕망은 반드시 비극을 불러온다는 고전의 법칙을 깨고 더욱 불온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발칙한 작품이다.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대리부를 고용해 아내와의 잠자리를 계획한 남편이 있다. 아내는 치욕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너무나 원했기 때문에 남편이 고용한 남자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는다. 아내가 아이보다 남자를 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월한 2세의 유전자만을 희망했던 남편이 이제 원하는 것은 아내의 사랑뿐.,

오늘부터 3회에 걸쳐 표제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의 원문을 연재합니다. 개성 있는 문체와 새롭고 신선한 상상력으로 그려 낸 소설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우리를 낯설고 아름다운 이야기의 세계로 초대할 것입니다.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1

불임클리닉에 다녀온 날 제임스를 만났다.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대로 제임스는 체격이 좋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진하게 쌍꺼 풀진 눈, 우뚝한 코, 선명한 입술. 키는 나와 비슷한 180센티미터 였고 영국 유학파였다. 지금껏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이상적이었다. 첫눈에 나보다 열 살이 어린 제임스가 마음에 들었다. 가볍게 커피 한 잔만 할 생각으로 나왔다가 제임스를 보고 마음이 바뀌어 저녁은 뭐로 할 거냐고 물었다.

   “스테이크요.”

   제임스는 메뉴판을 보지 않고 말했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주말마다 스테이크를 먹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주말이면 스테이크집을 찾아다니죠. 스테이크 좋아하세요?”

   “스테이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채식주의자세요?”

나는 고개를 젓고 채식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제임 스는 호들갑스럽게 메뉴판을 펼쳐 스테이크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 레스토랑 셰프가 영국서 왔는데 스테이크를 원더풀하게 만 들어요. 채식주의자는 아니라니까 한번 드셔 보세요.”

제임스의 권유에 스테이크 두 개를 주문했다. 스테이크가 나올 때까지 제임스는 인터넷 카페에 올린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계약하면 아내의 배란일에 맞춰 집으로 방문한다는 것과 정자 금 액이 주된 내용이었다. 스펙에 따라 정자는 A급에서 C급으로 나 뉘었는데 평균 삼백만 원에서 오백만 원에 거래됐다. 제임스는 자 신의 정자는 A급이라면서 한 번 잠자리를 하는 비용은 오백만 원 이라고 했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만 갖는다면 그보 다 더 큰돈을 달라고 해도 줄 수 있었다. 제임스는 영국에서 유학 할 때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에게 이 일을 처음 해 준 후 사명감 을 갖게 되었다는 말도 했다. 지금까지 이 일을 여섯 번 했는데 모 두 성공했다며 세 번 안에 아이를 갖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세 번 이라는 말에 당장 계약하려다가 문득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는 내가 하려는 이 일을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간밤에 제임스에게 만나자는 메일을 보냈다. 얼굴을 확 인하지 못하는 정자은행과 달리 이 일은 만나서 얼굴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처럼 내가 직접 내아이의 아버지를 고르는 것이다.

   “드셔 보세요.”

종업원이 내 앞에 접시를 내려놓자 제임스가 말했다. 하얀 접시 에 핏물이 배어 나온 고깃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제임스는 포크로 손바닥만 한 고깃덩이를 찍어 누르고는 나이프로 한 조각 썰어 입에 넣었다. 나도 고깃덩이를 썰어 입에 넣었다. 고기가 덜 익어 피 냄새가 났다. 테이블 아래로 고개를 처박고, 씹은 고깃덩 이를 휴지통에 뱉었다. 역시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물로 입 안을 헹구고 제임스 앞으로 접시를 밀어 주었다.

제임스는 빙긋이 웃더니 내 접시에 있는 고기를 가져다 먹었다. 접시에 시뻘겋게 고인 핏물까지 포크로 훑어 먹는 걸 보자 속이 니 글거렸다. 불편한 속을 달래려고 피클을 씹으며 건너편에 있는 백 화점을 바라보았다. 내가 일하는 백화점이었다. 폐점 시간이 지났 는데도 백화점 앞에는 쇼핑을 마친 사람들이 종이 가방을 들고 여 기저기 서 있었다. 제임스는 스테이크를 먹고 난 후 계약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제임스의 입술에 벌겋게 번진 핏물을 보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제임스가 간 후 한 장씩 나눠 가진 계약서를 뒷주머니에 넣고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뒷자리에 앉은 백화점 여직원과 마주쳤다. 신생아용품에서 일하는 여직원은 내 뒷자리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당황했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대신 여직원 것도 계산을 하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세 번 안에 아이를 갖게 해 준다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의 사의 말보다 제임스의 말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불임클리닉 을 다니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 같았다.

   “체격도 좋고 이목구비도 뚜렷해. 혈액형도 똑같고. 게다가 영 국 유학파야. 이름은 제임스. 이 정도 유전자면 A급이지.”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에게 제임스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 하나 낳겠다고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라고?”

아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내 팔을 베고 누운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다. 중성화 수술을 시킨 고양이는 새끼를 낳지 못했다. 그게 안쓰러워 품에 끼고 살았는데 이제는 자기가 내 두 번째 아내쯤 되 는 양 굴었다. 달라붙는 고양이를 밀어내고 아내의 허리를 끌어당 겼다.

아내는 나를 밀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벽에 걸린 십자가 앞으로 가더니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기도를 했다. 아 내의 입에서 기도 소리가 줄줄 흘러나왔다. 간절히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아내는 일방적으로 아이를 달라고 요구했다. 아내는 아이 를 갖기 위해 개종을 했다. 아이를 생기게 하지 않는 종교는 믿을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다. 개종을 했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 내는 시도 때도 없이 십자가 아래서 홀로 기도를 했다. 이제 아내는 나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오 직 기도. 기도만이 아이를 갖게 해 준다고 믿었다. 그런 아내에게 제임스와 계약서를 썼다고 말했다.

   “세 번만 하면 돼. 세 번 안에 아이를 갖게 해 준다고 했어.”

   “뭐?”

   아내가 발끈했다.

   “당신은 항상 일을 왜 그렇게 해. 내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봤 어? 그리고 제임스 성격 알아? 사이코패스면 어떡해? 영국 유학까 지 갔다 온 사람이 그런 짓 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아내의 나이는 내년이면 마흔이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아내도 더는 출산을 미룰 수 없었다. 불임의 원인은 아내가 아니라 나였 다. 정자 수가 거의 없었다. 백화점 앞에 있는 불임클리닉에서 정 액 검사를 받은 결과, 아내가 아닌 내가 불임의 원인으로 나온 것 이다. 태권도 선수까지 한 내가 불임일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 어 당황했지만 마음을 잡고 불임 치료를 받았다. 큰 욕심 없이 살 아온 나였으나 아이만큼은 욕심이 났다. 하지만 팔 년 동안 불임클 리닉에 다녀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 그런 와중에 같이 불임 치료를 받는 남자와 백화점 앞에 있는 호프집에 서 맥주를 했다. 일 년째 불임 치료를 받고 있는 남자는 취기가 오 르자 갑자기 옆자리로 와서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그게 뭔데요?”

나는 남자의 팔을 꽉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남자는 주위를 둘 러보더니 말했다.

   “이런 말 해도 되나 몰라. 불편한 방법이긴 한데 이런 식의 착상 이 임신이 잘된다고 하던데. 백 프로 성공한다나. 팔 년간 불임 치 료를 해도 안 됐으니 마지막으로 이 방법을 써 보는 것도…….”

   “대체 그게 뭐냐니까요?”

남자는 종이에 쓴 인터넷 카페 주소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남 자와 헤어지고 호기심에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인터넷 카페에 는 정자를 제공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이십 대였으나 간혹 삼십 대도 있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대학생 글 에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놈이라고.

십여 개의 글을 읽다 인터넷 카페에서 나왔다. 다른 남자의 몸 을 빌어서까지 아이를 가져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혈액형이 같은 남자를 만났 다. 다른 남자의 몸을 빌어서라도 아이를 갖고 싶었다.

제임스는 아내의 배란기인 일요일 밤에 방문 판매원처럼 집을 찾아왔다. 현관 앞에서 제임스는 거실을 훑어보고 구두를 벗었다. 내 옆에 있던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지만 제임스는 거들떠보지 않고 벽에 걸린 결혼사진 앞으로 갔다.

   “사모님이 아주 미인이네요.”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으나 이런 자리에서 듣다 보니 기분이 좋 지 않았다. 발로 툭, 고양이를 찼다. 고양이는 미끄러지면서 제임 스의 가랑이 사이로 굴러갔다. 놀란 제임스가 아내에게서 눈을 뗐 다.

   “안방은 저기예요. 난 잠시 나갔다 올게요.”

제임스에게 안방을 알려 준 후 고양이와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고양이는 나를 따라오지 않고 담장 위로 올라갔다. 대문을 나와 편 의점을 돌아가는데 지금쯤 제임스가 아내와 관계를 맺고 있을 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가 아내를 안고 아내가 제임스에게 안 기는 상상을 하자 목덜미에 땀이 났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 고 주택가를 한 바퀴 돌았다. 제임스가 관계를 갖는 시간은 삼십 분으로 정해져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갔을 때는 삼십 분 이 지나 있었다. 그런데 집 앞에 제임스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차 안을 슬쩍 보자 제임스는 보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