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는 털어놓고 싶은데 막상 친구한테 말하기도 애매하고...

결국 찾은 곳이 눈팅만 하던 연애포럼이네요.

왜 글을 쓸까.. 위로 받으려고? 뭐하는 짓이야 당장 헤어져야지. 라고 채찍질 받으려고?

모르겠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써볼게요.

29살 여자입니다.

3살 연상의 남자친구를 4년 넘게 만나고 있습니다.

4년. 요즘 시대에 매우 길게라면 길게 만나고 있네요.

그런데 요즘은 '잘' 만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말싸움이, 부딪힘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저는 사회생활 5년차로, 나름 회사생활 성실히 해나가는 월급쟁이 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월급받은 돈으로 소소하게 소비하고 저축하고.. 재테크에 관심있고,

언제까지 이 회사에서, 이 일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미래 걱정에 친구들과 소주한잔 기울이곤 합니다.

반면, 남친은 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당시 대학 졸업만 하면 대기업에서 대려가는 좋은 학과 진학하고서는, 본인 성향에 안맞는다는 이유로 1학년 끝나고 자퇴를 하고(이 독특함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네요 ㅎ 저한텐 없는 용기있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군 제대 후 다시 수능쳐서 원하는 과로 진학을 했고(그래서 졸업 나이가 늦습니다)

졸업 후에 대학원 준비도 하다가 의미를 못느껴서 그만 두고,

본인이 하고싶은 걸 찾다가 회사생활을 1년정도 했는데, 일이 잘 맞지도 않았고 건강까지 나빠져 그만뒀습니다.

그 이후에는 지금까지 필요에 따라(돈이 없어지면) 알바를 하고 있어요.

대충 윗 말만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게 느껴지시나요.

더욱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건, 위와 같은 과정에서 남친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1도 느끼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구요 자기 믿음이 굉장히 확고해요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지식을 쌓는 것에 너무 큰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그렇게 공부해서 자신만의 컨텐츠를 만들어서 나중에 그걸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구요 

정작 남친은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전혀 없는데,

제가 불만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축할 생각을 안해?

꾸준히 돈 벌 생각을 왜 안해?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그래?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위와 같은 물음으로 제가 남친을 닥달하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남친은 서운해해요. 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냐면서요.

저는 안그럴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문제들 위주로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더라구요.

돈이요. 주택청약을 어떻게 활용하고, 적금은 뭘 들고, 펀드는 뭘 하고, 월급관리를 어떻게 해야하고 등등...

그렇다보니 직장과 수입에 대해 고민과 불안없는 남친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난 너랑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은데, 같이 여행도 가고 싶고. 그러려면 수입이 있고, 저축을 해나가야 되는데

왜 너는 그 삶에서 만족할까.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저희 둘,

처음엔 '달라서 끌린다'는 말을 이 사람과 연애하면서 느꼈고, 달라서 너무 재밌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그 다름이 걱정과 스트레스가 되었네요.

서로 마찰이 있는 부분은 각자 사는 세상이 너무 달라서 타협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관계 정리 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헤어지자고 하려고 했는데,

헤어질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나서 헤어지자고는 못하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고 했더니 동의해줬습니다.

저한테 남친은 '인문학'같은 사람이에요.

사는데 정작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본질과 같은 걸 잘 보게 해줬거든요.

제가 좀 바보같이 눈치보면서 살았왔는데 이 사람과 함께 하면서 저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세상에, 사람에 절대 눈치보지 말고, 하고싶은 말 하면서 살고,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고.

그래서 남친은 제 생활방식이나 사고에 대해 제가 요즘 닥달하는 것처럼 단 한번도 지적한 적은 없네요.

그리고 항상 제 사소한 말 한마디를 잘 기억해서 데이트할 때 항상 반영해요.

저는 가끔 까먹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데..

누구보다 저를 사랑해준다는 느낌을 항상 받아와요.

저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걸까요.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받아들일 만한 큰 그릇이 못되는 걸까요?

어떤 선택이 저와 남친을 더 행복하게 할까요... 

스스로가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