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오랑우탄이 민간 의료에서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초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현지시간)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 행동 연구소(MPIAB) 이자벨 로머 박사팀은 인도네시아 야생 수마트라 오랑우탄 '라쿠스'가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이후 라쿠스는 인근 숲속에서 발견한 약초를 씹어서 으깬 후 상처에 발라 치료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오른쪽 눈 아래 뺨이 깊은 상처를 입은 아쿠스는 3일 뒤부터 아카르 쿠닝(학명 Fibraurea tinctoria)이라는 약초의 줄기와 잎을 씹어서 나온 즙을 상처에 7분 동안 반복해서 발랐다.
그런 다음 씹은 식물을 임시 붕대처럼 이용해 상처 부위를 덮었다.
이후 관찰 결과 며칠 동안 상처 부위의 감염 징후는 없었다.
치료 5일 후부터 상처가 아물고 한 달 안에 완전히 치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남아 열대우림에서 발견되는 덩굴식물인 아카르 쿠닝은 항균, 항염증, 항진균,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통·해열·이뇨 효과가 있어 전통 의학에서 이질, 당뇨병, 말라리아 등 치료에 사용된다.
연구팀은 라쿠스가 아카르 쿠닝을 다른 신체 부위에는 바르지 않고 30여분에 걸쳐 상처에만 반복해서 바른 것으로 미뤄볼 때, 의도적으로 약초를 이용해 얼굴 상처를 치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라쿠스가 상처를 치료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지, 아니면 이 행동을 다른 오랑우탄에게 배운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연구팀은 이런 치료 행동은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 행동 연구소(MPIAB) 이자벨 로머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간됐다.

한편, 인간과 DNA 97%를 공유하는 오랑우탄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능력을 갖춘 대표 동물이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도구를 사용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수화를 배워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오랑우탄은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센터 등에 감금돼 있을 때 배운 도구 사용법을 활용해 야생에서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구조를 즉흥적으로 만드는 식이다.
특히, 오랑우탄의 도구 사용 능력은 다른 종과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