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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북한이 남한 드라마를 시청한 청소년을 처형하는 등 인권 유린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무위에 그치고 있다.
인권 문제를 압박하기 위한 핵심으로 평가되는 '북한인권재단'이 여야 정쟁으로 6년 넘게 출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7일 통일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6년 제정·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관련 연구와 정책개발 등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러나 재단 출범은 6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재단은 이사장 포함 12명 이내의 이사를 두도록 돼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후보를 추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 후보 가운데 2명은 통일부, 나머지 10명은 국회에서 여야가 5명씩 추천해야 한다.
통일부는 지난 9월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와 김범수 사단법인 세이브NK 대표를 정부 몫으로 추천했고, 국민의힘 역시 8월 5명의 이사 후보를 국회 사무처에 제출했다.
국회에선 물밑 교섭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입장 외엔 이렇다 할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북한에선 주민들에 대한 사상 최악의 인권 유린이 계속되고 있다.
올 들어 가뭄으로 식량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전례 없는 미사일 발사를 일삼는 건 기본이다.
무엇보다 당국은 반사회주의 척결을 강조하면서 외부문물의 유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10월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을 시청하고 이를 주변에 유포한 10대 청소년 2명을 공개처형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는 2020년 12월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른 것으로, 남측 영상물 유포자는 미성년자라 해도 사형에 처하는 처벌조항이 담겼다.

인권 문제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마저 무용론에 휩싸인 상황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국제사회 차원의 유효한 압박을 끌어낼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래 꾸준히 북한인권 문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상 말뿐이다.
북한인권재단이 설립되지 못해 실질적인 활동이 어려운 것인데, 주무 부처인 통일부도 '이제는 국회 몫'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을 비롯한 대북 인권단체들은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비협조적인 국회에 대한 법적 대응까지 시사했다.
앞서 김태훈 한변 명예회장 등 국민의힘 추천 이사 후보 5명은 지난달 김진표 국회의장,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민주당 몫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5명을 추천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두 차례에 걸쳐 발송한 바 있다.

한변 측은 오는 29일까지 민주당의 이사 추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와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낼 방침이다.

김태훈 한변 명예회장은 "북한 주민의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해 법을 만들어놓고 6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건 국제인권 규범 위반이자 반인도범죄를 방조하는 것"이라며 "법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하는 조치(이사 추천)를 다하지 않는 국회와 민주당에 대해 부작위로 행정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은 전날 서울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74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북한의 상황을 보면 북한인권재단 설립은 매우 시급하고 적절한 사안"이라며 법률에만 존재할 게 아니라 (재단 출범으로) COI 등 업무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북한인권재단을 조속히 설립해 북한인권정책 추진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